2003년 『작가세계』 신인상 수상 작가 김민효의 작품집. 표제작 「절망과의 섹스, 키섹스」를 비롯해서 8편 모두 폭력을 주제로 삼아 진지한 접근과 숙고, 뛰어난 묘사력으로 인간의 극한 심리를 천착하고 있다.
「절망과의 섹스, 키섹스」는 표제작으로, 동성애는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소설 속 화자는 아버지의 절망과 섹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길들여진 성은 별 거리낌이 없다. 그것은 절망을 받아들이는 방법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화자의 무의식에는 이성을 향한 그리움이 환상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 남자는 아직 가보지 못한 그곳을 향해 8차선 도로를 가로지른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그는 도로 한가운데 갇히고 만다.
「아무도 그 밤을 말하지 않았다」는 한밤중 고속도로에서 사망한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죽은 남자를 둘러싼 주변인들은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얼마간 모두 머리를 맞댄다. 그들은 수사관보다 더 치밀하게 사건의 진실에 접근한다. 혈연간의 발목잡기와 직장 동료 사이의 경쟁이 주검 뒤에서 은근하게 드러난다. 주변인들은 어느 순간 무언의 약속처럼 사건을 은폐하기 시작한다. 그들 모두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은 짙은 안개 속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가로등 불빛보다 더 희미하기만 할 뿐이다.
「검은 수족관」은 곳곳에서 썩어가는 검은 물의 냄새를 풍기는 수족관 같은 현대사회, 또한 그 속에서 겨우 숨을 쉬며 목숨을 연명하면서 전염병적 파국을 초래하는 현대인들의 관계를 주인공 남자를 통해 낱낱이 파헤쳐 부조리한 면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림자가 살았던 집」은 작가의 데뷔작이다. 주인공은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들로 미혼모는 전직 군수의 딸인데, 지금은 다방을 전전한다. 마을의 백정이 그 미혼모를 맞아들인다. 주인공은 백정의 아들이 된다. “새끼를 밴 짐승은 금을 높게 쳐주지만 처녀가 애를 배면 헐값이 된다”며 백정은 아들을 능멸한다. 어린 아들에게 칼을 들려주며 돼지 멱을 따도록 강요한다. 또한 백정은 자신의 의도가 먹혀들지 않을 때마다 아들의 어미를 강간한다. 아들은 백정인 아버지를 버리고 제 생부를 찾아 도시로 떠난다. 그러나 과거의 그림자가 그를 붕괴시켜버린다. “폭력에 시달리는 어머니에 대한 유년의 기억을 추적하며, 폭력의 일상화와 폭력에 희생되는 인물의 묘사를 관찰자적 태도로 묘사하는 능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폭력이라는 선명하고 다소 선정적인 주제에 편향된 측면이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폭력이라는 주제에 접근해가는 진지한 태도와 숙고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실종클럽」은 손을 잃어버린 화가의 왜곡된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조각가 친구의 작업실에 갔다가 화가는 전동드릴에 손가락 4개를 잃게 된다. 화가가 손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과 같다. 그의 깊은 절망은 무당의 굿판에서 일부분 해소된다. 그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숨어버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클럽을 만든다. 자신을 실종시키고 싶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또한 놀란다. 그들은 권력과 명예와 이름만 있을 뿐 자신이라는 실체를 확인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이 일정 기간 숨어들 완벽한 공간을 준비한다. 실종클럽에 가입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럴싸한 명예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거창한 명성을 가졌거나 인기가 많을수록 숨고 싶은 욕망은 더욱 강하다.
「바람아래」는 칠월칠일 은하수에서 건져진 남자 이야기다. 그의 어머니는 인간 안팎, 세상 안팎에 있는 모든 신들에게 아들의 출세와 안녕을 빌고 빌었다. 남자는 어머니의 바람만큼만 출세를 했다. 그는 촌놈이었고, S대 법대를 나오지 않았으므로 굳건한 자리에 앉혀줄 짱짱한 영감님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포기했다. 변호사 개업을 해서 돈이나 왕창 벌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내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20세기 식으로 선택한 아내는 결코 21세기 식으로 의식이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자는 불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불행하지 않다는 것이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남자는 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길을 떠난다.
「7cm의 허공」은 한쪽 다리는 다른 다리보다 7cm나 짧아 늘 허공을 딛고 있는 한 남자와 더 안락한 세상을 향해 더 높은 하이힐을 신는 여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한쪽 허공을 메우기 위해 껍데기뿐인 여자를 선택하고 동시에 사랑을 버린다. 그가 버린 사랑은 자신과 닮은꼴인 아버지를 배경으로 가졌기 때문이었다. 10년 후 여자와 다시 만난 남자가 여자에게 기울어질수록 여자는 점점 더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두 사람은 고용주 남자와 피고용주 여자가 되어 갈등이 갈수록 심해진다. 7cm의 허공을 딛고 서 있는 남자와 7cm의 하이힐을 신고 있는 여자 모두 허공을 딛고 있기는 매 한가지다. 허공은 그들의 욕망의 높이인 것이다.
「비눗방울」은 양로원에서 마주치게 된 출신 신분이 다른 두 여자 이야기이다. 죽어가는 순간에는 선해진다는 진리를 일깨운다. 운명을 받아들였든, 저항하고 거부했든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다 사라진다는 것이다, 비눗방울처럼. 햇빛이 강할수록 비눗방울에는 더 현란한 빛깔이 어룽거린다. 그러나 그것 또한 순간이다. 귀족이었건, 천민이었건 죽음은 공평하게 한 번만 찾아온다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도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갖게 한다. 잘 죽는다는 것은 잘 사는 것과 같은 본질임을, 그렇다면 잘 사는 것은 어떻게? 라는 질문을 던진다.
김민효
서울예술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문학예술을 전공했다.
작가세계에 <그림자가 살았던 집>으로 등단하고
소설집으로 <그래, 낙타를 사자>와
함께 엮인 소설집으로 <2006 젊은 소설>, 미니픽션 <술集> 외 6권이 있다.